아침에 일어나 민트색 암막 커튼을 걷고, 집 앞 커피숍에서 사 온 스페셜티 원두를 커피 메이커에 내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십니다. 손목에 스마트 밴드를 차고, 러닝화 끈을 질끈 맨 뒤 매일 아침 5km를 달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규칙적으로 어떤 행동이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루틴(Routine)’이라고 하는데, 이는 ‘운동 루틴’, ‘스킨케어 루틴’, ‘독서 루틴’ 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퇴근 후 술 한잔’도 직장 생활의 루틴이 될 수 있고요. 이렇게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루틴’이라는 사이클을 만들어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자랑하곤 합니다. 루틴을 지키는 것이 내 라이프스타일이고, 나 자신이 부지런하다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업이나 브랜드의 상품을 판매하고, 마케팅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루틴에 들어가 더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번 칼럼은 제품이 아닌 삶의 제안하는 요즘의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완벽한 연출로 마음을 사고, 온라인으로 제품을 사는 옴니쇼퍼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옴니쇼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옷은 꼭 입어봐야 살 수 있고, 식재료나 음식도 굳이 직접 만져보고, 유통기한을 눈으로 확인해야 믿음이 간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터넷에 사진으로만 올라와 있는 제품만 보고 어떻게 사냐는 불신이 있었지만, 다양한 인터렉티브 콘텐츠와 상세페이지, 간편한 모바일 결제 등으로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사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횟수가 훨씬 많아졌고, 구입이나 반품도 손쉬워졌습니다. ‘똑똑하게 잘 샀다’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제품이 진열되어있는 쇼룸이나 매장을 찾아 상세하게 확인한 뒤 온라인에서 최저가 상품을 찾고, 할인 쿠폰이나 포인트를 사용해 편하게 집으로 배송을 받습니다. 이렇게 모든 방식을 사용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구매하는 옴니쇼퍼(omni-shopper,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매를 넘나드는 소비자를 뜻하는 용어)들이 많아지고 있어 온/오프라인으로 통합된 판매 채널은 기본입니다.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

 

지난달, 미국의 유명 스마트폰 브랜드에서 신제품을 정식 출시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정식 출시일에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대기 줄이 없었고, 오히려 유튜버와 기자들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 시리즈 출시 당시 같은 장소에서 오전 6시부터 100미터 가까운 줄을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사전에 주문해서 픽업만 하는 고객이나 사전에 관람 예약만 한 고객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라는 특수 상황도 있었지만, 본사에서 직접 판매하는 자급제 제품 주문은 100% 예약제로만 이루어지고, 이동통신사 3사도 온라인 선착순 예약으로 판매를 했습니다.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한 이 브랜드의 매니아들은 신제품 출시 소식에 온라인으로 광클을 해서 주문 예약을 하고, 신상품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로수길 스토어에서 직접 제품을 만져보며 ‘아, 제품이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체험을 하는 수준이었죠. 이곳에서는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제품을 전시하는 디스플레이 공간이자, 온라인 면세점처럼 제품을 고객에게 전달만 해주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훌륭하게 디스플레이를 한 쇼룸

 

라이프 스타일을 논할 때 스웨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의 마케팅/판매 전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브랜드는 모든 제품 이름을 영어가 아닌 읽기도 어려운 스웨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모든 제품에는 ‘Design and Quality of Sweden’이라는 표식을 적어둡니다. 스웨덴 국기의 파란색, 노란색 컬러를 시그니처 컬러로 사용해 한국에서 제품을 구입하고 있지만,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스웨덴 현지에서 쇼핑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듭니다.

 

이곳에서 가장 감탄사가 흘러나오는 부분은 바로 ‘쇼룸 (Showroom)’입니다. 이 룸 그대로 우리 집에 옮겨두고 싶을만큼 아주 훌륭하게 디스플레이를 해 두었는데, 여기서 판매하는 제품은 물론 책장 속에 꽂혀있는 책, 서랍 속의 노트, 신발장 위에 있는 신발까지 정말 북유럽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연출을 해두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만큼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런 ‘완벽한 연출’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대로 사고 싶게 돼서 쇼룸에 있는 제품 바코드를 핸드폰에 모두 찍어두게 됩니다. 거실, 주방, 화장실, 침실 등의 섹션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쇼핑몰은 모두 ‘완벽한 연출의 쇼룸’을 시작으로 소비자에게 북유럽 감성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작은 소품도 있지만, 의자, 가구, 소파, 침대와 같은 큰 인테리어 소품들이 대부분이라 매장에서 직접 구입해 배달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걱정 없이 앱을 통해 구입하는 고객들도 많습니다.

 
 

제품이 아닌 가치를 판매하는 밸류 마케팅

 

가벼움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마케팅

 

‘저희 러닝화는 중량이 1kg밖에 되지 않아 가볍습니다’ 라는 설명보다는 ‘저희 러닝화는 가볍기 때문에 조깅을 할 때 1km 더 달리실 수 있습니다’ 라는 설명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선택의 촉을 살리며 쇼핑을 하고 있을 때, 매장에 있는 직원분이 다가와 제품의 장점에 대해서 나열하고, 구구절절이 설명을 하면 슬쩍 피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 중 하나는 어떠한 제품을 구매했을 때 나에게 어떤 가치가 창출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밸류 마케팅(value marketing)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러한 마케팅을 잘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영국 의 한 코스매틱 브랜드를 손꼽고 싶습니다.

 

향긋한 향기가 있는 라이프 스타일

 

이 브랜드는 ‘Fresh Handmade Cosmetics’라는 슬로건을 기본으로 환경보호, 공정무역, 성 소수자 인권 보호, 포장 최소화 운동 등에 앞장서고 있는 윤리 경영자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물에게 실험을 하거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필요한 제품에는 자연 분해가 되는 용기들을 사용하고 있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왜’ 파느냐입니다.

 

실제로 매장에 방문하면 직원들은 구구절절한 제품 설명을 하지 않고, 직접 비누로 거품을 내 향긋한 향기로 고객을 매장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코로나19 속에서는 벽면에 ‘편하게 손을 닦고 가세요’라는 표시를 적어놔 정말 손을 닦으러 들어갔다가 제품을 구입하고 나오게 됩니다. 직원에게 제품에 대해 질문을 하면, 어떠한 성분이 들어갔고, 함량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제품을 사용하면 내 몸에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고, 어떻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이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바다거북이가 더 이상 플라스틱에 찔려 죽지 않고, 100% 베지테리언이라 동물성 물질 없이 내 몸을 더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등의 설명으로 말이죠. 실제로 이 브랜드의 직원을 스텝(Staff) 이나 직원(Worker) 라고 하지 않고, 캠페이너 (Campaigne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고소한 버터 향으로 가득 찬 우리 집 버터 크로와상

 

이처럼 어떠한 제품을 팔기 위해서 ‘가격’을 논하고, ‘제품의 성분이나 함량’을 구구절절이 읊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 제품을 통해 내 삶이 어떻게 개선되는지 보여주고, 자발적으로 나도 그들이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변화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 제품의 구입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집 크로와상은 맛있어요’ 보다는 ‘우리 집 버터 크로와상은 토스터에 가볍게 구우면 여러분의 집이 고소한 버터 향으로 가득 찬 베이커리가 되어요’ 라는 설명만으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일 수 있습니다.

 

김유경작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