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길에서 가슴 뛰는 이벤트 중에는 현지 유명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세계의 유명 미술관마다 빠지지 않는 소재가 바로 음식인데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음식 작품은 삶과 욕망, 행복함에 대한 환상의 집약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당대 예술가들의 캔버스에 담긴 음식을 보면 세계사의 맥락에서 어떤 음식이 사랑받았고, 맛과 향기를 어떻게 즐겼는지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요. 오늘은 보기만 해도 식욕이 돋는 미술사에 길이 남은 음식을 주제로 한 작품 6점을 소개합니다.

 
 

앙투안 볼롱의 버터 더미 Mound of Butter (국립현대미술관, 워싱턴D.C.)

 

빵을 찍어 먹고 싶을 정도로 실감 나는 버터 정물화(*출처 : 서양화가 최연욱 네이버 블로그)

 

바로 빵을 찍어 먹고 싶을 정도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앙투안 볼롱(Antoine Vollon, 1833~1900)의 작품입니다. 그가 살았던 19세기에는 버터를 마트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유를 짜는 농가의 농부들에게 구했는데요. 새벽에 짜낸 우유와 농부의 노동력으로 만들어낸 녹진한 버터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림에는 농장에서 막 얻어온 흰 천에 쌓인 버터 더미와 계란이 놓여 있습니다. 앙투안 볼롱은 이 버터의 질감을 얻기 위해 캔버스에 물감을 쏟아붓고 붓뿐만 아니라 나이프와 손가락 등을 다양하게 사용했습니다. 색감도 화이트부터 옐로우와 브라운 계열까지 표현했는데, 이는 당시 목초를 먹고 자란 젖소에게서는 황금빛 버터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이를 깊이 있게 관찰한 후 그림으로 표현할 정도로 버터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과일, 햄 치즈, 버터 등을 음식을 그렸던 이유는 가난으로 모델을 살 돈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처럼 생존에 대한 욕구가 음식으로 생생하게 표현된 작품들은 당시 대 히트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미국 부유층에게 사랑받았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플로리스 반 데익의 치즈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cheese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암스테르담)

 

아침 식탁 위의 치즈와 버터가 상징하는 물질의 풍요를 담은 정물화(*출처 : VIVA ROUTE 네이버 블로그)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15세기에서 17세기 유럽 역사의 큰 흐름으로써 서양 예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이는 예술가들의 미술 풍조에도 다양한 영향을 끼쳤는데요. 테이블 위의 식기와 잔, 먹다 남은 빵과 고기 등 다양한 소재를 작품의 주제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특히 플로리스 반 다이크 (Floris van Dijk, 1575~1651)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네덜란드의 식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치즈가 있는 정물’에서는 동그랗고 묵직한 네덜란드 전통 치즈가 등장합니다. 치즈 단면에 칼자국마저 생생해서 그 앞에 놓인 빵에 한 조각 얹어 한 조각을 얹어 맛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요즘 SNS나 동영상을 통해 먹방을 즐기는 심리처럼 당시 사람들은 이런 정물화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꼈습니다. 특히 이런 문화를 선도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의 신흥 부유층이었는데요. 1648년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공화국을 수립해 해상 무역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부유층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미술 작품들을 고가에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신성한 종교화나 전원을 그린 풍경화가 아니라 일상의 욕구를 그려낸 음식 정밀화였는데요. 한없이 풍족해 보이고 세속적 쾌락을 추구하는 당시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삶은 공허하다는 허무주의 바니타스(vanitas) 사조를 만들어 냅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Campbell’s Soup Cans (MoMA, 뉴욕)

 

세계 미술계를 뒤흔든 거장이 그린 수프 캔(*출처 : 한국일보)

 

전 세계 현대 미술의 중심지,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는 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1987)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명성보다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되는 것을 중시했고, 실제로도 비즈니스맨으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는데요. 작품의 소재에서부터 전시 방법까지도 기존 미술계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을 통해 한번 보면 뇌리에 깊이 박히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중미디어, 유명인, 소비재 등을 작품화하거나, 마치 대중미디어의 광고 제작 기법같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오브제를 똑같이 복제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요. 이는 당대 예술계의 고전이었던 ‘독창적이고 세밀한 것이 예술이다’라는 상념을 깨뜨림으로써 그 희소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본인이 즐겨 먹는 캠벨 수프를 판화, 인쇄 기법의 하나인 실크스크린과 같은 방법으로 쉽고 빠르게 인쇄했는데요. 그마저도 공장의 조수들에게 작업을 맡겼습니다. 그는 예술을 위해 고뇌하고 창작하는 것마저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캠벨 수프야 말로 대중적인 메시지라 생각했고, 캠벨 수프는 앤디 워홀의 대표작으로써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니 일상 속의 예술이라는 그의 의도가 적중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얀 다비드 존 데 헤임, 햄 랍스터 과일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Ham, Lobster, and Fruit (보이만스 반 뵈닝겐, 로테르담)

 

풍요로운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알려주는 수작(*출처 :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홈페이지)

 

유럽 최대의 무역항이 있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는 해당 지역 출신의 부유한 법률가인 프란스 야코프 보이만스가 시에 유증한 소장품이 전시된 ‘보이만스 반 뵈닝겐’이라는 미술관이 있는데요. 그 컬렉션은 고전 작품에서부터 현대 미술까지 12만 점에 이르는 등 세계적인 갤러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명작 가운데 특히 백미로 꼽히는 작품은 네덜란드의 가장 유명했던 정물화가 화가 얀 다비드 존 데 헤임 (Jan Davidsz. de Heem, 1606~1683)의 그림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테이블에 넘칠 듯한 과일, 생선, 고기 등을 묘사해 럭셔리 라이프를 표현했는데요. 외국에서 수입해 온 고가의 랍스타와 과일 중에서도 값비싼 수입 과일이었던 레몬 등 풍성하게 차린 테이블은 모드가 꿈꾸는 부유함을 상징하고, 주로 보석함과 고급 식기를 잘 어우러지게 배치해 식욕을 자극합니다.

 
 

웨인 티보의 파이 진열대 Pie Conter (휘트니 미술관, 뉴욕)

 

오랜 역사와 맛과 향이 스민 파이와 모성애의 오마주(*출처 : 오마이뉴스)

 

뉴욕 4대 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에서 주목해야 할 작가는 단연, 웨인 티보(Wayne Thiebaud, 1920~2022)입니다. 팝아트와 정통 유화 사이에 서성이는 그는 도시와 디저트에 대한 그림을 주로 그린 그는 “레몬 머랭 파이, 케이크를 보면 그건 일종의 예술 작품이고 나를 매료시킨다.”라고 이야기하며 디저트가 우리의 눈과 입과 가슴을 즐겁게 하는 것이기에 충분히 예술로 승화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파이와 케이크의 크림 종류를 다양한 붓 터치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설탕이 듬뿍 들어간 컵케이크에서부터 미니멀한 쉬폰, 녹진한 버터크림과 신선한 생크림 케이크 등을 섬세하게 그린 그는 붓을 든 파티시에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심플하게 대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이 그림에는 토핑 등 장식에 집중하지 않고 심플하면서도 크림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는데요.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으면 마치 진열대에서 오늘 먹을 파이를 고르는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집니다. 미술 평론가들은 웨인 티보의 작품을 “마티스의 달콤한 선에 드가의 구도, 피카소의 시점, 보나르의 색감이 함께 살아있다”라고 평가했는데요. 그는 정물을 앞에 두고 묘사하지 않고 케이크와 파이를 상상하며 기억하는 대로 그려내는 상상 속의 케이크이기 때문에 때로는 아이콘과 같이 느껴집니다.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 Apples and Oranges (오르세 미술관, 파리)

 

역사상 유명한 세 개의 사과 중 하나로 꼽히는 폴 세잔의 작품(*출처 : 큐알아트 홈페이지)

 

요즘 사람들은 “사과”하면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떠올리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과는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뉴턴의 사과 세 번째는 폴 세잔의 사과입니다. 이들 사과로부터 종교가 시작되고 종교에서 근대과학으로 넘어왔으며 과학에서 예술로 넘어가게 되었는데요.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유럽 미술사에 아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이 정물화는 구도와 시점이 특별합니다. 왼쪽에 놓인 과일 접시와 중앙에 높이 솟아오른 과일, 오른편의 포트가 모두 다른 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인데요. 하나의 시점으로 한 풍경을 묘사해야 한다는 당시의 고정 관념을 깨고 각 정물에서 발산하는 풍성한 인상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중앙에 쏠리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평면이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 이 그림은 야수파의 창시라 불리는 마티스, 입체주의 피카소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여러 정물 사이의 화음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오르세 미술관에 방문한다면, 폴 세잔의 사과 앞에서 미술사를 바꾼 순간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브리야사바랭의 말이 떠오릅니다. 요즈음은 내가 먹는 음식의 사진을 쉽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데요. 특히 휴대전화로 찍고, 남긴 음식 사진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가면 삶의 기쁜 순간이 담긴 나만의 멋진 갤러리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음식을 먹고, 사진을 남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