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빵은 인류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역사는 농업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곡물 재배와 빵 만들기의 발견은 초기 인류 사회가 정착하고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결국에는 고도의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세계사의 변혁기마다 빵이 탄생했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로우며 삶과 종교와 예술에 빵이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빵의 발전 과정을 세계사의 맥락으로 살펴보고 지금까지 사랑받는 7가지 빵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시대의 역사를 반영한 빵의 세계사
빵은 밀과 다른 곡물을 재배하고 제분하고 굽는 과정이 필요한 최초의 가공식품 중 하나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빵을 주식으로 여겼고 무역을 위한 화폐로도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집트 노동자들은 빵과 맥주로 급여를 받았습니다. 로마제국도 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모든 사람이 저렴한 빵으로 삶을 영위하도록 정부 산하의 빵집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 관행은 중세 유럽 전역에서 계속되었는데요. 르네상스 시대에 빵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으며, 흰 빵은 부유층의 사치품이었고 갈색 빵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사람들이 “자유, 평등, 빵”을 요구했던 것처럼 빵은 정치적 저항의 도구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악명 높은 발언인 “케이크를 먹게 하라”는 국민의 불만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자 빵의 정치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빵은 역사와 문화적인 연관성 외에도 종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으로 간주되며 성찬식에 사용되며 유럽의 선교사가 아시아에 선교활동을 하면서 빵 문화를 먼저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빵은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맛으로 소비되며 여전히 빵은 문화적 정체성, 사회 경제적 지위, 정치적 권력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브레첼 Bretzel – 독일 7세기, 기도문을 잘 외운 아이들에게 작은 보상을
브레첼의 정확한 기원은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중세 초기에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브레첼은 기도할 때 가슴을 가로지르는 팔 모양을 닮은 브레첼(Bretzel)은 7세기 독일에서 기도를 잘 외운 어린이에게 주는 상이었는데요. 점차 이 빵은 육식이 금지된 기독교 사순절에 밀가루, 물, 소금과 같은 간단한 재료로 만들 수 있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습니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브레첼의 모양이 빵집을 상징하는 간판으로 걸리기도 하는데요. 유럽의 문화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 빵은 프레첼 (pretzel) 이라는 이름으로 과자 형태로 변형되었고, 오늘날 스포츠 행사 및 기타 모임에서 맥주 안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바게트 Baguette – 프랑스 18세기, 프랑스혁명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바게트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시작된 좀 더 최근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혁명가들은 빵에 대한 접근을 기본적인 인권으로 보았고, 사회 계층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빵에 대한 동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빵의 평등권이 생기며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도 누구나 같은 품질의 빵을 먹을 권리를 인정받게 되었는데요. 바게트는 프랑스가 빵의 강국으로 성장하는 디딤돌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고, 프랑스 정부는 바게트를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정하고 1993년 ‘프랑스 바게트 법령 (Le Décret Pain)’을 제정했습니다. 바게트에는 밀, 물, 소금, 효모 외 어떤 첨가제가 들어가서도 안 되고 자연 발효해야 하며 무게는 250~300g, 길이는 55~65㎝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빵의 맛과 형상을 넘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야말로 바게트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카스텔라 Nagasaki castella – 일본 16세기, 개항기의 나가사키 빵은 종교보다 강하다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16세기 포르투갈이 일본에 전한 빵의 일종입니다. 이 케이크는 원래 포르투갈어로 “Pão de Castela”라고 불렸습니다. 16세기 일본의 개항기 포르투갈의 상인들과 함께 선교사들이 먼저 나가사키에 도착했고 그들은 빵 굽는 전통을 전파했습니다. 달걀과 설탕이 듬뿍 들어가 달콤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 카스텔라는 귀한 음식으로 일본의 상류층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에도막부(1603~1867) 성립 후의 기독교 금교, 쇄국정책이 실시되면서 선교 사업은 저항에 부딪혔고 선교사들은 결국 일본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은 일본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대량 생산되며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나가사키 카스텔라는 빵이 종교보다 강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특별한 디저트입니다.
크루아상 Croissant – 오스트리아 17세기, 씹어 먹는 복수의 통쾌함
크루아상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오스만제국의 비엔나 포위 공격에 대응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비엔나의 제빵사들은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반항심을 보여주기 위해 오스만 국기의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고 이를 키페를 (Kipferl)이라 불렀습니다. 이 페이스트리는 버터와 반죽을 겹겹이 쌓은 다음 반죽을 여러 번 접고 말아 구워 냈는데요. 비엔나에서 가장 뛰어난 제빵 제과사들을 프랑스로 대동해 오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를 통해 프랑스로 전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풍미가 있고 바삭한 식감의 크루아상은 대략 19세기에 완성되어 프랑스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갔고, 커피 한잔과 더불어 세계인의 아침 식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샌드위치 Sandwich – 영국 18세기, 샌드위치 백작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 노동으로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는 샌드위치 가문의 4대 백작인 존 몬태규 (John Montagu)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도박에 광적이었던 백작은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식사하고 싶어 했고, 카드놀이를 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빵 두 조각 사이에 고기를 끼어 가져오라고 주문했습니다.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가 인기를 얻으며 하인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는데요. 식사에 필요한 시간을 줄어야 그들이 더 많은 노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 이민자들을 통해 샌드위치는 미국 전역에 전파되었습니다. 미국의 공업화 물결 속에 공장의 노동자와 사무실 직원들에게 점심으로 제공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군인들이 전투에 임하며 휴대 가능한 식사로 그 입지를 굳혔습니다. 대중적인 패스트푸드인 햄버거의 모태도 바로 샌드위치입니다. 이 빵은 사람의 식사 시간을 줄이고 노동의 효율을 앞세우는 현대 문명의 상징입니다.
베이글 Bagel – 미국 19세기, 뉴욕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역사
베이글은 오랜 역사의 빵이며 유대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최초의 베이글은 폴란드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보관과 운반이 용이하기에 유대인 공동체에서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여행자나 요리가 금지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음식이었기 때문인데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베이글을 전파합니다.
특히 뉴욕에서 많은 유대인 이민자들이 베이글 가게와 베이커리를 열었고 번창했습니다. 숙련된 제빵사가 반죽을 동그랗게 성형하고 끓인 후 굽는 노동집약적 작업이기에 상대적으로 고가였고 예약해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문화의 부흥을 이루었던 뉴욕에서 “베이글을 먹는다”라는 것은 “멋있는 뉴요커가 된다”라는 의미와 같았습니다. 20세기 베이글이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되면서 가격이 낮아졌고 미국 전역의 식사 빵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베이글은 유대 경제가 미국에 자리 잡기까지 근본적인 수입원이 된 상징적인 빵입니다.
호두과자 Hodu-gwaja – 한국 20세기, 천안 한국의 철로와 고속도로의 산 역사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안 광덕면은 대덕리, 매당리, 지장리를 비롯하여 호두의 명산지로 유명합니다. 1934년 제과 기술자였던 부부가 호두와 흰 팥으로 과자를 만들어 팔자고 해서 시작된 것이 호두과자인데요. 이는 순식간에 천안 명물이 되었으며 해방 직후에는 기차 안에서 호두과자를 팔도록 납품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대표 음식이 되었는데 이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호두과자는 비교적 가볍고 쉽게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간식으로서, 이동 중에 먹기에 편리합니다. 둘째, 천안이 대한민국 중부지역에서 수도권과 지방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라는 점입니다. 천안역은 경부선과 호남선 등이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며 천안IC를 비롯한 고속도로와 광역버스 터미널 등도 있어 대중교통 및 개인 차량을 이용한 이동이 매우 용이합니다. 셋째, 한국의 경제 부흥과 함께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게 되면서 호두과자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펼쳐집니다. 호두과자는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낳은 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빵은 각각 세계사와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빵이 만들어진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반영합니다. 브레첼에서 호두과자에 이르기까지 빵은 지역 사회의 가치와 전통을 담아내며 후대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빵 한 조각을 맛보며 문화와 역사의 가치를 음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