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때문에 더 이상 장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Never run to the grocery store for dinner again!)
미국인 푸드라이터 매기 틸먼(Maggie Tillman)이 밀키트가 미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주는 한 문장입니다. 홈스테이로 미국과 캐나다 가정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아침 식사는 시리얼로 시작해, 점심은 집에서 싸 온 햄 샌드위치를 먹었고, 저녁은 집에 돌아와 간단한 고기류와 감자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멜팅팟(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융합을 뜻하는 단어, Melting Pot)이라고 불리는 미국이지만, 함께 생활해보니 생각만큼 다양한 음식을 매일 같이 먹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밀키트의 등장으로 미국인의 식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밀키트 시장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블루 에이프런(Blue Apron), 고블(Gobble), 다이널리(Dinnerly) 등 전문 셰프가 직접 식재료를 손질해주는 밀키트 회사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의 리나스맛카세(Linas Matkasse)는 온라인과 우편으로 다양한 식재료와 레시피 정보를 제공하는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식재료를 직접 손질해서 가져다주며 딜리버리 중심의 밀키트 시장이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16년부터 밀키트 전문 스타트업 회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2017년부터 대형 유통사들이 PB 밀키트 브랜드를 기획해, 자사의 대형마트와 온라인 몰을 통해 적극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며 현재는 밀키트 시장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밀키트는 소비자의 어떤 필요를 채우고 있을까?
밀키트의 정의부터 다시 살펴볼까요? 밀키트(Meal kit)는 식사를 뜻하는 Meal과 구성품 또는 셋트를 말하는 Kit의 합성어로,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정 간편식 시장에서 가장 진화된 카테고리입니다. 하루 이틀 전에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면, 그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가 손질 또는 세척되어 집 앞에 도착하고, 주어진 레시피대로 따라서 만들기만 하면 완성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신속함과 간편함만 따지면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돼지국밥,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쫀득한 매운 닭발, 따뜻한 미트볼 등이 더 큰 장점이 있죠. 그렇다면 밀키트는 대체 소비자의 어떤 니즈를 채웠길래 전 세계인의 식탁과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고 있을까요?
우리는 요리하는 인간(Homo coquens)
미국 하버드대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 교수는 요리가 없었다면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며, 최초로 ‘불을 제어하고 요리를 발명한’ 인류 호모 에렉투스를 치켜세웠습니다. 랭엄 교수는 인간의 역사는 요리를 통해 발전해 왔다는 뜻으로 ‘호모 코쿠엔스(요리하는 인간, Homo coquens)’라는 학명 형식의 별칭을 짓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인간은 불과 도구를 활용해 요리하고, 여럿이서 함께 나눠 먹는 등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 식재료가 모두 손질돼 집으로 배송되는 밀키트는 ‘요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와 재료를 손질하는 것이 너무나도 귀찮은 우리의 심리를 간파한 전략 상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랩의 연구에 따르면 밀키트를 구매하는 이유는 간편함, 재료구매 부담경감, 시간 절약, 요리실력 보완 순으로 조사된 바도 있습니다. 컵밥을 사서 엑기스에 뜨거운 물만 부어 먹거나, 미트볼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은 ‘요리’가 아닌 ‘조리’ 일 뿐이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기는 어려운 상품이기 때문에 밀키트는 ‘호모 코쿠엔스’로서 요리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와 ‘귀차니즘’을 모두 해결해주고 있는 솔루션으로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내 몸에 맞는 식단을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자유
‘땅콩은 빼주세요’ ‘락토프리 우유로 주세요’ ‘할랄 인증을 받은 닭고기인가요?’ 몇 년 전만 해도 레스토랑에서 이런 요청이나 질문을 하면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식재료는 있을 수 있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나 신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개인의 절대적인 식단이죠. 식단이 그렇게 다양한가? 하고 의문이 생겨 비행기를 탈 때마다 특별 기내식(Special Meal)을 살펴보는 편인데, 당뇨식, 저염식, 유당 제한식, 해산물식 등의 건강식뿐만 아니라 힌두교식, 이슬람식, 유대교식, 인도 자이나교도용 채식(Vegetarian Jain Meal, VJML) 등의 종교식, 땅콩 알레르기, 호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위한 알레르기 방어식 등 생각보다 많은 식단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항공사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까다롭고,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었죠.
미국의 한 밀키트 회사의 메뉴는 글루텐 프리(gluten-free), 유당 제한(dairy-free), 저탄수화물(low carb), 채식(vegetarian) 등 자신의 식단에 따라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분리해 두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외식하면 지키기 힘든 식단을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내용물에 대해 사전에 정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도 않습니다. 팁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는 밀키트를 주문해서 먹었을 때 팁도 아낄 수 있는 장점도 있죠. 다양한 식단과 인종이 공존하는 미국의 밀키트를 살펴보니 한국의 밀키트 시장이 어떻게 확대될 것인지 예측이 되기 시작합니다.
현재 한국의 밀키트 메뉴를 분석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셰프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된 고메 상품, 맛집과의 협업을 통해 개발된 시그니처 상품, 최대한 쉽고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스피드 상품. 반면 미국의 밀키트 메뉴는 식단·국가·조리 시간·고기의 종류·칼로리에 따라 분류해 굉장히 다양한 상품들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한국은 마케팅 홍보 관점에서 상품이 개발되었다면, 미국은 개인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구분이 되어있는데요. 밀키트 시장이 더욱더 확대될수록 한국의 밀키트도 미국식으로 변화하지 않을까요? 소비자의 기호와 심리를 간파하는 전술이야말로 시장의 수요를 끌어올리는 최상의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