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영화에서는 음식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주로 꿈과 사랑, 가족과의 행복을 주제로 마치 거울과 같이 삶을 투영하는데요. 극적인 반전이나 액션, 스릴이나 긴장감은 없지만 어릴 적 동화책을 펼쳐보는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은 이처럼 요리를 통해 삶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6편의 음식 영화를 소개합니다. 미식의 나라인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다양한 서사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풍요롭게 채워보세요.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 딜리셔스 Délicieux

 

18세기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을 담은 영화 ‘딜리셔스(Délicieux)’

 

*2021년작 / 감독: 에릭 베스나드 / 출연: 그레고리 가데부아, 이자벨 까레, 벤자민 라베른헤 / 러닝타임 112분

 

18세기 프랑스 혁명 직전이 배경인, 이 영화는 요리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망스롱이 주인공입니다. 귀족의 전담 요리사였던 주인공이 온갖 수모를 겪고, 본인의 고향으로 돌아가 최초의 레스토랑을 만든다는 줄거리인데요. 화면 색감과 배치가 마치 샤르댕의 정물화를 연상케 하고, 아름다운 쳄발로의 선율이 돋보여 시각, 청각 모두를 만족시키는 재미가 가득한 영화입니다.

 

영화에서는 ‘델리시우 (Délicieux의 프랑스 발음)’ 라는 이름이 총 두 번 등장하는데요. 첫번째는 망스롱이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과 창의성을 발휘해서 만든 디저트의 이름입니다. 이로 인해 망스롱은 귀족의 저택에서 쫓겨나지만 셰프로서의 주체적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고향에서 새롭게 시작한 레스토랑의 이름입니다. 당시 프랑스 귀족들은 허영심과 특권의식이 가득해 그들만 미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프렌치 레스토랑의 탄생의 시작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제공하는 주막 같은 곳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지요. 프랑스 미식의 시작과 18세기 음악과 미술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좋은 와인과 함께하는 삶, 와인을 딸 시간 Uncorked

 

마스터 소믈리에를 꿈꾸는 주인공의 삶을 담은 ‘와인을 딸 시간(Uncorked)’

 

*2020년작 / 감독: 프렌티스 페니/ 출연: 마무두애시, 코트니B.반스 / 러닝타임 103분

 
‘와인을 딸 시간’은 미국 멤피스의 흑인가에서 살며 현실이 녹록지 않은 주인공 일라이자가 가업 승계와 꿈의 실현 사이에서 답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낮에는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땀 흘리고, 저녁에는 와인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은 마스터 소믈리에를 꿈꾸며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현실에 적응하기를 기대하는 아버지와 꿈을 찾아 떠나고 싶은 아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 못 하고 갈등하지만, 점차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삶을 지원해 줍니다. 마스터 소믈리에 시험을 보는 날 자신의 양복을 입혀주고 낙방한 아들을 위해 묵묵히 와인 한잔을 건내면서요.
 

영화 포스터의 절반은 와인병, 절반은 바비큐를 굽는 장작더미가 배경으로 깔려 있는데요. 주인공은 그 경계 선상에서 와인 방향으로 서 있습니다. “병에 갇혀 있으면 안 되는 꿈이 있다 (Some Draems can’t stay bottled up)” 라는 문구를 통해 감독은 와인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고 전문가들은 와인을 어떻게 선택하고 품평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시에 담긴 장인의 철학, 스시장인 지로의 꿈 Jiro Dreams Of Sushi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스시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2012년작 / 감독: 데이빗 겔브 / 출연: 오노지로, 오노 요시카즈, 오노타카시, 야마마토 마쓰히로 / 러닝타임: 81분

 

‘스시장인 지로의 꿈’은 스시 영화의 교과서 같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미쉐린가이드 3 스타를 받은 최고령 스시 장인인 오노 지로 (小野二郞)의 80년 일생을 조명하는데요.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스키야바시 지로”는 도쿄 긴자의 한 빌딩 지하에 위치해 한 번에 10명의 손님만 앉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공간입니다. 그는 술이나 커피 및 자극적인 음식을 삼가고, 손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장갑을 끼거나 무거운 것을 들지 않는 등 평생 최고의 스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요. 최고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하며 멈추어야 하는 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영화에서 초밥의 맛은 생선과 밥의 조화와 균형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No.21의 3악장은 스시의 섬세함과 밸런스를 청각적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한평생을 스시와 함께한 장인의 삶과 철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흑산도에서 해산물과 함께한 우정, 자산어보 玆山魚譜

 

해산물을 통해 만난 정약전과 장창대의 삶과 우정을 담은 ‘자산어보(玆山魚譜)’

 
*2021년작 / 감독: 이준익 / 출연: 설경구, 변요한 / 러닝타임 126분

 

수묵화처럼 흑백으로 깔리는 이 영화는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의 서문을 모티브로 합니다.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백과사전이자 어류도감인데요. 한국의 전통 음식, 특히 해산물을 연구할 때 참고하는 중요한 문헌입니다. 조선 후기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정약전은 모든 관직과 재산을 몰수당하고 흑산도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진정 백성들에게 필요한 학문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해양 동식물들의 이름, 모양, 크기, 습성, 맛, 쓰임새, 분포 등을 자세히 기록하여 그 이름을 <자산어보>라고 붙입니다.
 

유배지에서 술로 나날을 보내던 정약전은 창대라는 청년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는 흑산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바다와 생선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짱뚱어와 아귀를 요리해 먹고 홍어와 가오리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정약전과 장창대의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이 감동적입니다.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이라 한 것은 검을 흑의 암흑보다는 바다의 찬란한 가치를 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목포 일대의 섬과 바다에서 촬영하며 색을 포기한 대신 명도와 채도를 더하고 빼는 식으로 화면의 입체감과 깊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반짝이는 바다가 흑백임에도 생동감 있게 보이는 것은 무색이야말로 가장 찬란한 색채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스페인 요리에서 맛보는 삶의 가치, 사랑이야 That’s Amor

 

스페인 가정식 요리를 통해 사랑과 삶의 가치를 되찾는 ‘사랑이야(That’s Amor)’

 
*2022년작 / 감독: 숀 폴 피치니노 / 출연: 라일리 댄디, 아이작 곤살레스 로시 / 러닝타임: 95분

 

요리만큼 창의적이고 낭만적인 것은 없다. 삶에 지친 여주인공이 스페인 셰프와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스페인 요리의 매력으로 빠져드는 영화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을 꿈꾸며 2년 동안 비서로만 전전해 온 소피아는 서른 살 생일날, 회사에서 해고당하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 친구의 외도를 목격하고, 다리까지 부상을 당하는 등 삶의 원동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스페인 요리는 아주 기본적인 (super super simple) 재료와 간단한 레시피로 만들어집니다. 트러플 소금으로 맛을 낸 스페니쉬 오믈렛, 잘 익은 토마토의 가스파초, 브랜디에 설탕에 절인 과일을 넣은 상그리아, 하몽과 만체고 치즈 등 매력적인 스페인 요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영화를 보는 내내 입맛을 다시게 되는데요. 요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은 주인공을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삶을 위로하는 소울 디저트의 향연, 세상의 모든 디저트 Love Sarah

 

디저트를 통해 치유와 연대,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상의 모든 디저트(Love Sarah)’

 

*2021년작 / 감독: 엘리자 슈뢰더 / 출연: 셀리아 아임리, 섀넌 타벳, 셀리 콘, 루퍼스 펜리 존스 / 러닝타임 97분

 
‘세상의 모든 디저트’는 런던에서 꿈에 그리던 베이커리 오픈을 앞두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라’를 위해 엄마 ‘미미’와 딸 ‘클라리사’ 그리고 베프 ‘이사벨라’가 ‘러브 사라’를 운영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영화입니다. 미미는 사라가 가장 좋아했던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영감을 얻어, ‘러브 사라’를 전 세계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마치 ‘고향 같은 곳’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는데요. 세 여성은 디저트를 통해 추억을 선물하며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해 갑니다.

 
영화는 세계 각지의 디저트를 통해 따뜻한 감동과 힐링을 선사하는데요. 리스본에서 온 모자를 위한 포르투갈식 타르트 ‘파스델 드 나타’부터 라트비아 출신의 택배 기사를 위한 북유럽 전통 디저트 ‘크링글’, 일본에서 온 여성이 부탁한 ‘말차 밀 크레이프’부터 호주식 케이크 ‘레밍턴’, 덴마크의 시나몬롤 ‘카네스네일’, 터키의 바클라바, 아랍의 전통 케이크 ‘바스부사’, 이스라엘의 ‘오렌지 세몰리나 케이크’까지 다양한 디저트가 등장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통해 연대하며 성장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는 지친 삶에 한줄기 달콤한 위안을 줍니다.

 
 

지금까지 프렌치 정찬, 와인, 스시, 해산물, 스페인 가정식, 디저트로 이어지는 미식의 향연을 영화로 즐겨보았습니다. 이들 영화에서 감독들은 공통으로 “꿈꾸는 삶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여정에 맛있는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이죠. 마음의 양식을 채우기 좋은 계절 가을. 이 영화들과 함께 행복한 포만감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