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다. 초록이 시작되는 지금, 설렘 품은 로맨스 영화는 어떨까. 18세기 영국의 고풍스러운 풍경과 아름다운 의상, 귀족들의 저택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즐거운 영화 <오만과 편견(2005)>이다.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동명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것으로, 영국을 담은 영화 중 가장 영국적인 모습이 살아있다고 평가받는다.

 

너른 벌판에 우뚝 선 나무들 사이로 아침햇살이 서서히 번지는 풍경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짹짹이는 새들, 영롱한 피아노 소리 사이로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등장한다. 하트퍼드셔의 조그만 마을, 다섯 명의 자매 중 차녀인 그녀는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이다. 순종적인 장녀 제인과 정반대인 엘리자베스. 당연히 “여자 인생의 목표는 단 한가지야. 바로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지.”라는 엄마의 가르침이 맘에 들 리 없다. 제인 오스틴의 실제 성격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마음의 파고 끝에, 진정한 사랑인 미스터 다아시와의 결혼으로 이르게 된다는 스토리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는 명문장은 지금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2005)>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과 결혼, 당시 여성의 삶을 다룬 이야기와 더불어 커다란 재미는 식사 장면들이다. 영화 속 섬세한 감정표현, 뛰어난 묘사처럼 테이블 위에는 시각, 후각적 쾌감이 넘친다. 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귀족들을 보면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 함께 우아한 식사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정도. 하루는 먼 친척남자가 “감자가 너무 맛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감자를 먹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느 숙녀분께 찬사를 드려야 할까요?”라며 실로 ‘섬세한 아첨 실력’을 자랑한다. 극중에서 유일하게 카메라 포커스에 잡히는 메뉴가 이 감자 요리다. ‘그저 감자를 잘 구워 버터를 바른 것 뿐이잖아!’싶어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감자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아직 감자가 들어오지도 않았던 시기. 영화 속 배경인 18세기 영국에서는 감자가 메인 디시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구운 감자요리처럼, 영국음식의 특징은 레시피가 복잡하지 않고 심플하다는 것! 어쩌면 ‘영국 요리는 밋밋하다’는 말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일례로 영국의 인기 TV시리즈 <Sharpe>에는 이런 장면도 등장한다. 화려한 조리법을 설명하는 프랑스 대령. “먼저 고기살을 뼈에서 발라내 올리브기름과 식초, 와인에 종일 재우지요. 그다음 소금, 후추, 마늘, 그리고 구할 수 있다면 노간주 열매를 한 줌 넣으면 금상첨화예요.” 이어 영국군 샤프 소령의 대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우리는 그냥 고기를 잘라서 물에 삶고 소금을 쳐서 먹는데요?” 소박하고 단순하게 자연 그대로의 재료 맛을 살리는 영국 요리의 개성은 특유의 실용적 사상에서 비롯됐다. 좋은 재료를 쓰고 그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들을 찾아서 먹어보는 것도 재밌겠다. 우리나라의 <퀸즈파크>는 영국풍 자연주의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영국풍의 우아한 인테리어, 친환경 식재료만을 사용한 요리의 조화가 근사하다. 브런치, 스테이크, 파스타 등 다양한 메뉴뿐 아니라 매장에서 직접 구운 페스트리와 디저트 등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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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그룹에서 운영하는 영국풍 자연주의 다이닝 레스토랑, 퀸즈파크

 
대표적 영국 요리는 로스트 비프와 요크셔 푸딩이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은 소고기를 덩어리째 구운 것이 로스트 비프다. 요크셔 푸딩은 밀가루 우유 달걀을 반죽한 것에 로스트 비프를 만든 뒤 남은 육즙과 기름을 부어 굽는다. 여기에 양념 없이 그대로 끓는 물에 푹 데친 야채들을 곁들인다. 온가족이 교회를 다녀온 일요일 점심에 푸짐하게 먹던 메뉴로 ‘선데이 로스트’라고도 부른다나. 영국 여행을 하면 카페나 숙소에서 주로 먹게 되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도 특별한 조리법은 없다. 달걀, 버섯, 토마토, 블랙푸딩, 빵, 콩, 베이컨 등을 넘치도록 담은 접시 옆에 홍차와 주스를 두면 완성. 그야말로 푸짐함에 중점을 둔 메뉴다. 특별한 레시피나 향신료 없이 그대로 굽거나 튀겨 화려한 기교는 없으나 재료의 풍미는 살아있다. 또한 커다란 쟁반에 음식을 푸짐하게 놓고 각자 원하는 만큼 덜어먹는 문화라 한두 명이 갑작스레 방문해도 얼마든 식사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겠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은 소고기를 덩어리째 구운 대표적 영국 요리, 로스트 비프

 
영국식 식사에서 메뉴보다 중요한 것은 식사의 분위기다. 영국에서 식사는 사교의 다른 이름이다. 평범한 저녁식사건 파티건 식탁 구성원들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마을 이야기, 취향에 대한 이야기 등 다채로운 주제로 아주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단순히 ‘먹기’를 넘어서 식사 시간을 충만하게 즐기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이 영화 속 숙녀들처럼 영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식사예절을 엄격하게 교육받는다. 음식이 나오면 항상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기본이다. 커트러리의 적절한 사용, 입을 벌리고 씹거나 소리내지 않기,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지 않기, 손을 뻗어 집지 않고 “소금 좀 건네주세요” 식으로 부탁하기, 옆 사람에게 음료를 따라주겠다고 권하기 등을 식사 내내 지켜야 한다. ‘가장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픈 남자’ 1위로 <오만과 편견> 속 다아시가 뽑힌 바 있다. 우아한 식사매너, 다정한 대화법을 가진 사람과 함께라면 소박한 음식도 황홀한 맛이겠다.

 

글. 자유기고가 김은성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