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해년, 좋은 기운이 가득하다는 황금돼지해입니다. 복 많이 받고 운수대통하라는 뜻에서 돼지를 주제로 여기저기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고 돼지 모양 기념품이 넘치는데,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12간지를 사용하는 아시아 각국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올해가 60년 만에 돌아왔다는 황금돼지해라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유럽 몇몇 나라에서도 연초부터 복 받는다며 돼지를 챙긴다고 합니다. 동양보다 한술 더 떠 돼지해뿐만 아니라 해마다 일어나는 연례행사입니다.
우리가 설날 아침이면 동전 모양으로 가래떡 썰어 끓인 떡국을 먹는 것처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중부 유럽과 남부 스칸디나비아 일부 국가에서는 새해에 반드시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유럽 중에서도 특히 게르만 민족의 후손들 사이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전통 민속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 먹는 새해 첫날 저녁 만찬에 잘 구운 돼지갈비, 포크 립이나 새끼 통돼지구이, 다양한 소시지 요리와 슈바인스학센 같은 독일 족발 등이 빠지지 않습니다.
새해 무렵 아이들한테 주는 선물도 돼지와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아몬드 가루를 설탕으로 반죽해 구운 과자, 마지팬이나 사탕도 아기돼지 모양의 선물이 인기입니다. 제과점에 진열해 놓은 빵 중에도 돼지머리 모양의 빵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식탁 위에도 돼지, 간식도 돼지, 빵도 돼지, 선물도 돼지 인형 등 새해를 온통 돼지와 함께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꿈에서 돼지를 보면 재물이 생기고 그래서 복권부터 살 생각을 하는 것처럼 유럽사람, 그중에서도 게르만 민족의 후예들은 돼지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돼지를 그냥 돼지가 아닌 복 돼지(Glücks Schwein)라고 부릅니다. 독일어로 행운을 의미하는 그릭(Glück), 돼지를 뜻하는 슈바인(Schwein)을 합한 그릭슈바인은 복을 가져오는 행운의 돼지라는 뜻입니다. 돼지가 행운을 몰고 온다는 믿음은 사실 유럽에 비교적 넓게 퍼져 있습니다. 고대 게르만족은 물론, 켈트, 프랑크, 바이킹, 영국의 튜턴을 포함한 광의의 게르만 민족 사이에 퍼진 공통된 믿음이었기에 이들의 후예인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영국 아일랜드 스웨덴 등지에서도 보이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꿈속에서 돼지를 봐야 행운이 온다고 믿지만 게르만 후손은 돼지를 먹기만 해도 복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새해 돼지고기를 먹으며 행운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일부에서는 돼지가 먹이를 먹을 때 주둥이를 앞으로 밀고 나가며 먹기에 끊임없는 전진을 의미해 행운의 상징이 됐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창의적이며 미신적인 해석입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으니 돼지를 행운의 상징으로 삼은 까닭은 고대 게르만족의 돼지 토템, 즉 돼지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또 게르만의 음식문화,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컨대 독일에는 소시지 종류만 1,000가지가 넘습니다. 소시지가 이렇게 다양해진 이유는 오랜 세월 독일인이 기나긴 겨울을 날 때 필수 저장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마다 김장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 독일도 가정마다 독특한 소시지가 발달했습니다. 물론 그 배경은 중부 유럽의 척박한 환경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하늘이 보이지 않아 검게 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졌으며, 뿐만 아니라 겨울은 춥고 길며 날씨는 변덕스러웠습니다. 그 때문에 언제나 식량이 부족했고 가축도 사육 기간이 짧은 돼지 외에는 키우기가 힘든 데다 그마저도 사료가 없어서 겨울이 오기 전에 종자로 삼을 종돈만 남겨 놓고는 돼지를 몽땅 잡아 좋은 고기는 햄과 베이컨으로, 부스러기는 소시지로 만들어 보관해야 했습니다. 독일 소시지가 다양해진 배경입니다.
그만큼 돼지와 소시지는 게르만 민족에게 생명줄과 다름없었고 그렇기에 돼지는 행운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척박한 환경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훈장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독일어로 “돼지를 품는다(Schwein haben)”는 말이 행운을 빈다는 인사말이 됐고 새해 족발과 소시지 등 다양한 돼지 요리로 가족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황금돼지해와 그릭슈바인, 동서양 민속을 보면 올해 소시지와 족발만 먹어도 어째 운수 대통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