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송으로 회자되었던 1975년 삼립호빵 TV 광고

 
1970년대 말 삼립호빵의 CM송은 애국가만큼이나 친숙한 겨울철의 일상이었다. CM송은 사라졌지만 호빵의 인기는 여전하다. 삼립호빵 관계자에 의하면 2015년 이후에는 매년 1억 개의 삼립 호빵이 팔린다고 한다. 추위가 시작되는 10월에서 2월 사이에 매출의 대부분이 발생한다. SPC삼립이 1971년 10월 시장에 선을 보인 호빵은 김이 피기만 하면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추위가 시작되면 생각나는 삼립호빵의 전통적 베스트셀러 제품인 단팥호빵

 
호빵이란 이름은 ‘따듯한 찐빵을 호호 불며 먹는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호빵의 소는 단팥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팥을 넣은 발효 빵이 이때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3세기 무렵 중국에 처음 등장한 만두는 발효시킨 빵 속에 소를 넣은 것이었다. 주로 쪄서 만들기 때문에 증병(蒸餠)으로 불렀다. 한반도에 찐 발효 떡인 ‘상화’(雙花)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이다. 유명한 고려가사 쌍화점(雙花店)(1291년)에 상화를 파는 회회(回回)아비가 등장한다. 회회는 지금의 중국 신강지역을 터전으로 한민족이었다. 회회족은 당나라 때부터 수도 장안에서 증병을 팔았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의 팔관회에도 상화(雙下)가 등장한다.

 

고려는 물론이고 조선에서는 상화는 술로 발효시킨 피에 팥소를 넣은 음식이었다. 조선 중기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찐떡(蒸餠)인 만두법과 상화법이 동시에 등장한다. 여문 밀로 밀가루를 낸다. 누룩 우린 물을 좋은 술과 함께 약간 넣어 그 물로 반죽을 한다. 오이, 박, 버섯 따위를 간장물에 볶고 잣이나 후춧가루로 양념하여 만든 소를 넣어 찐다. 팥을 져서 어레미로 쳐 꿀에 반죽하여 넣거나 팥을 쪄 으깨어 솥뚜껑에 볶아 찧어 꿀에 만다.

 

조선시대에는 밀가루, 꿀, 설탕이 귀했기 때문에 지금의 찐빵과 같은 형태와 맛을 가진 상화는 서민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양예수(楊禮壽:?~1597)가 저술한 의서 의림촬요(醫林撮要)에는 ‘기운이 위로 떠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 먹는 약인 주사안신환(朱砂安神丸)을 설명하면서 ‘증병(蒸餠)은 곧 밀가루로 찐 떡(小麥末蒸餠)인데 민간에서는 쌍화병(雙花餠)이라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신유한(申維翰)이 일본 기행(1719년~1720년)을 적은 글인 해유록(海遊錄)에는 ‘또 만두(饅頭)란 것이 있어 우리나라 상화병(霜花餠) 같은데 겉은 희고 안은 검고 맛은 달다.’란 구절이 나온다. 일본 만쥬(饅頭)도 중국에서 들여온 음식 문화인데 발효 떡에 팥소를 넣은 것이 한국의 상화와 같다. 조선시대 내내 상화는 지금의 찐빵과 같은 형태와 맛을 지닌 음식이었지만 밀가루나 단맛을 내는 꿀이나 설탕이 귀했기 때문에 서민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선말기가 되면 만두가 양반 선비들의 전유물에서 중인들도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한다. 중인 출신 지규식(池圭植)이 1891년에서 1911년까지 쓴 하재일기(荷齋日記)에는 ‘밤에 큰 눈이 내렸다. 춘헌(春軒)에 가서 만두(饅頭)를 먹고 돌아왔다.'(1892년 1월 9일)와 같이 만두를 먹은 기록이 8번이나 등장하는데 1897년 10월 27일 ‘청나라 사람 다사(茶肆, 식사와 차를 마시는 곳)에 들어가 이영균(李永均)과 만두 한 주발을 먹었다. (喫饅頭一椀)’ 기록이 유독 눈에 띈다. 1882년 발생한 임오군란(壬午軍亂)때 서울에 주둔한 청나라 군대를 따라 중국식 만두 식당이 서울에서도 영업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1940년에 서울에 경성증빵조합(京城蒸빵組合)(매일신보, 1940년 08월 23일)이 생겨나지만 찐빵은 1960년대 이전에는 대중적으로 유행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찐빵은 물론이고 밀가루 음식이 대중화된 것은 1960년대 중반에 시작돼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분식 장려 운동 때문이었다. 쌀 부족과 미국으로부터의 무상 혹은 저렴한 밀가루 공급으로 정부는 밀가루를 이용한 분식 장려를 정권의 핵심 정책으로 내걸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따스하던 삼립호빵 몹시도 그리웁구나”

 
오디오 플레이어

1978년 2월 동아방송 대상과 문화방송 광고대상에서 특별상을 받은 삼립호빵 CM송(가수 김도향)

 
1963년에 인스턴트 라면이 등장하고 1964년에 삼립식품의 크림빵이 대 히트한다. 전국에 분식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중국집들은 요리 대신에 짜장면을 팔았다. 분식집들이 직접 만들어 팔던 ‘손찐빵’의 인기는 한국의 제빵 업체들도 넘기 힘들었다. 공장빵은 데우기가 힘들었고 데우면 수분 보존이 어려워 제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립식품의 호빵과 찜기는 이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면서 1970년대 이후 겨울 최고의 간식으로 등장한다. 1980년대 먹거리의 다양화로 고전을 겪지만 1990년대 이후 편의점, 슈퍼를 통한 판매 등 유통망이 다양해지면서 겨울 따듯한 먹거리의 왕으로 귀환에 성공한다.

 

요즘 호빵은 단팥, 야채 이외에도 다양한 맛으로 출시되고 있으며 간식 그 이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바쁜 아침 한 끼 식사로 손색없고 편맥족(편의점 맥주족)의 간단한 맥주 안주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호빵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