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오, 삶의 의미는 따뜻한 도넛을 베어 무는 데 있는 거야.” 도넛가게 장인 오스카의 말이다. 루치오는 빙그레 웃고는 도넛을 한입 크게 베어문다. 갓 만든 도넛은 천국처럼 황홀하다. 손 안에서는 따끈하고 입에서는 부드럽다. 혀끝으로 녹아드는 달콤함에, 인생의 고통과 외로움이 순간 휙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다. 운명이나 행복 같은 삶의 가치에 대해 늘상 오스카와 티격태격하던 루치오가, 오스카의 더없이 간결하고도 완벽한 한 마디에 그저 수긍하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저 도넛 같은 단순한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 <100일 동안의 행복>의 한 장면이다. <100일 동안의 행복>의 주인공 루치오는 적당히 철없고 유쾌한 마흔 살의 헬스 트레이너였다. 사랑하는 부인 파올라와 아들딸을 키우며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헬스장에서 바람을 피우다 발각되는 바람에 쫓겨나게 된다. 갈 곳 없어진 루치오는 장인 오스카의 도넛 가게 뒷방에서 머물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 위기는 위기가 아니었다. “당신은 말기암으로 살 날이 석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화학 치료도 받아보고 자연 치료요법도 시도하던 루치오. 그는 온갖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을 엉망으로 보낼 순 없지!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행복한 모습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어.” 그는 스위스에 가서 ‘조력 자살’을 하기로 선택하고, 통증 없이 생활할 수 있는 100일의 시간을 정해두고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소설은 그가 100일만 살고 죽기로 한 후 벌어지는 상황을 세세히 다룬다. 100일에서 시작해 99, 98, 97, 96일 식으로 전개되며 루치오가 자신에게 주어진 100일을 하루씩 사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는 매일 행복의 요소를 실천한다. 장인어른이 만든 달고 따끈한 도넛을 매일 아침 즐기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도넛이 입 속에서 사라지는 짧은 시간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행복일까. 죽기 전, 지상에서의 행복이 영화 장면처럼 지나간다면 원하던 대학이나 회사 입사나 큰돈을 벌었던 순간은 아닐 것 같다. 혀끝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음식을 먹었던 순간이나 연인과의 설레는 첫 키스, 내 아이의 사랑스러운 첫 옹알이가 기억날 것 같다. 원래 행복은 짧고 강렬한 것이니까.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말한다. “나중에. 보통은 문제를 미루기 위해 우리가 수없이 많이 하는 말이다. ‘나중에 전화할게’라는 말은 나중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가장 흔한 표현이다. ‘나중이 있을까?’ 하는 물음도 우리가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질문하거나 내 경우처럼 우리가 전혀 하지 않은 중요한 질문이다. 나중이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늘 나중은 있다. 나중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현재를 즐겨라. 그게 더 낫다.” 루치오가 보내는 100일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소설은 이탈리아의 햇살과 왁자지껄한 사람들처럼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다. 어떤 고통과 어려움에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노래하는 듯한 사람들이 나온다. 지중해의 화창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삶의 달콤함과 쓴 맛을 동시에 담은 농담같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을 덮으면 달디단 도넛과 뜨겁고 쌉싸름한 커피가 간절해진다. 이탈리아 오스카의 도넛가게는 아니지만, 핑크빛 로고의 던킨 도너츠에서 완벽하게 동그란 도넛 하나를 골랐다. 말랑하고 부드럽고 따끈한 도넛이 입 속에 가득차자, ‘아, 행복해’란 탄성이 툭, 나왔다.
도넛은 루치오의 삶의 태도 같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들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운명에 절망하던 그가 선택한, 진짜 삶의 가치이고 용기였다. 내일 숨을 거두더라도 오늘의 행복에 손을 뻗겠다는 다짐이자, “오늘은 오늘의 행복을 음미하겠어!”라는 선언이다.
글. 자유기고가 김은성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