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패션5의 ‘프루스트의 마들렌’
“혹시 그 책 읽어보셨나요?”
이 주제의 글을 쓰려고 하니 한 지인이 묻는다.
“천만에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총 7부작. 페이지수로 40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그것도 번역본을 읽는다는 건 상상조차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도전정신도 없거니와 현실적으로 초장편 소설을 읽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도 없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얘기다. 솔직히 말해 내가 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글을 어떻게 쓰기에 과자를 먹는 장면을 무려 1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묘사할 수 있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는 얀 마텔의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를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소설을 쓸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묘사’인 거 정도는 안다. 그래서 내공이 충만한 고수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사진이나 영화를 보듯 어떤 장면을 짧지도 길지도 않게, 핵심을 전달하는 묘사의 기술에 감탄하곤 한다. 그러면서 나도 그런 능력을 가져봤으면 하는 질투심을 느낀다. 그들이 초보자들에게 전하는 충고 중 하나는 묘사가 지나치면 글이 온갖 자질구레한 설명과 이미지 속에 파묻히고 만다는 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묘사력에 스스로 도취한 나머지 줄거리를 흐릴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런 점에서 관심목록 1호였다.
그러던 차에 정말 우연하게도 이 책에 나오는 한 부분, 즉 마들렌 먹는 장면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 일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요일 조찬이나 브런치 약속을 종종 하는데 주로 이태원에 있는 ‘패션5’ 2층 식당에서 한다. ‘라뜰리에’라는 곳인데 요새 젊은이들 표현으로 ‘강추’다. 그곳에 있는 메뉴는 거의 다 먹어봤을 정도니 매니아에 가깝다고나 할까.
l 이태원에 위치한 ‘패션5’
이 식당 1층은 빵집이다. SPC그룹이 하는 ‘파리바게뜨’가 가장 보편적인 빵집이고, 그보다 한 단계 고급스러운 곳이 ‘파리크라상’이다. 이곳 패션5 빵집은 그보다 더 고급이다. 제조업으로 치면 일종의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다. 이곳에서 나름 인기가 있다 싶으면 그 제품을 파리크라상으로 내보내는 식의 구조다. 얼마 전 라뜰리에에서 조찬 약속이 있던 날, 좀 일찍 도착해 1층 빵집을 둘러봤다.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은 ‘갓 구운 빵’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오븐에 빵을 굽는 냄새만큼 기분 좋게 하는 건 없다. 사실 그 냄새에 끌려 빵집을 들리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선반에 있는 마들렌에 눈길이 갔다. 평소 좋아하는 서양식 과자인데 최근 건강을 생각해 먹고 싶어도 자제하고 있었는데 노란 색깔에 앙증맞은 모습의 마들렌이 하도 먹음직스러워 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춘 것 같다. 그런데 그 마들렌에 붙어있는 표지를 보고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런 표지판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제품명 : 프루스트의 마들렌’이었다. 설명인 즉,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여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과자로 여겨지는 마들렌.”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가격은 4000원. 꽤 비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순전히 그 표지판 때문에 한 개를 구입해 먹어봤다.
l 이태원에 위치한 ‘패션5’
그리고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10페이지에 걸쳐 묘사한 문제의 그 과자가 바로 마들렌이라는 걸 알게 됐다.(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날 나는 드디어 그 소설의 마들렌 부분을 읽게 됐다. 그러고 보니 허접하긴 해도 나도 마들렌에 대한 기억이 있긴 하다. 내가 아는 얄팍한 빵에 대한 지식으로는 원래 마들렌은 한번 구울 때 많이 구워서 좀 식혔다가 보관해 놓고 먹는 양과자다. 갓 구운 건 밀가루 맛이 너무 나고 오래 되면 겉이 말라 풍미가 떨어진다. 그리고 마들렌을 구울 때 온도가 안 맞으면 가운데 볼록 솟아난 부분이 터지면서 마치 화산재가 산에서 흐르듯 끈적한 게 밑으로 내려오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데 착안해 ‘마들렌처럼 울다’라는 표현도 쓴다. 어쨌거나 비싼 과자라서 조금씩 베어무는데 계란과 벌꿀과 버터가 조합된 달짝지근한 맛과 향, 그리고 입안으로 들어갈 때 촉촉한 느낌이 정말이지 행복감을 주는 그런 과자인 것 같다.
나는 작은 과자 하나에도 스토리를 입혀서 파는 비즈니스에 감탄했다. 표지판 아래 원산지가 프랑스로 적혀 있는 걸 봐서는 수입한 과자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이름을 프랑스 제과업체에서 붙였든, 아니면 SPC그룹 직원이 생각해냈든 그런 아이디어를 통해 나 같은 고객에게 호기심과 즐거움을 전달했다면 성공일 것이다. 그 마들렌에 ‘프루스트의’란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면 결코 4000원이란 거금(?)을 지불하면서 사 먹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마르셀은 마들렌과 함께 홍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빠져든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고 수많은 페이지와 긴 문장들을 지나쳐야 그 기억에 도달하지만. 참고로 마들렌 부분을 묘사한 것 앞부분에 나오는 데 한 대목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 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주인공은 이 과자를 먹으면서 자신의 연인의 매력 포인트를 기억하는 간질간질한 묘사를 계속한다. 소설에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용기를 내서 도전해 보시길.
글. 매일경제신문 논설실장(편집담당 상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장편소설로 1913년부터 1927년까지 7권으로 나뉘어 출판됐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어느 날 어머니가 건넨 홍차와 함께 마들렌을 먹게 되는데, 홍차에 살짝 적셔져 입 속에서 부서지는 마들렌의 맛에 까맣게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이 환영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한다. 동시에 소설의 시점은 과거로 이동하고, 소년이었던 화자의 성장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담론이 많이 등장한다. 어린 소년의 풋사랑, 엄마에 대한 소년의 집착, 질투로 얼룩진 욕망, 그리고 금기와 죄의식에 사로잡힌 동성애 등, 온갖 형태의 사랑이 아름답거나 비극적인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 밖에도 상실과 죽음, 예술에 대한 욕구와 좌절 등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집요할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현대문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작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