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소비자들의 취향은 날로 까다로워지고 있고, 소비의 기준은 보다 깐깐해지고 있다. 진화하는 소비자의 기준을 반영하듯 전 세계의 식품 트렌드도 변화무쌍하게 달라지고 있다. 올 한 해에도 주목할 만한 식품 경향들이 등장했다. 현재 글로벌 식품 시장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는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 ‘나를 위한 먹거리’…‘건강’한 식품이 뜬다 바로 가기
■ ‘채식’, ‘식물성 단백질’ 시장의 부상…지속가능성의 시대 바로 가기
■ 무인 시스템, 배달 서비스…푸드테크의 부상 바로 가기
 
 

■ ‘나를 위한 먹거리’…‘건강’한 식품이 뜬다

 
‘건강’과 ‘웰빙’은 지난 몇 해간 전 세계 식품업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장 강력한 트렌드 중 하나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에선 빠른 경제 발전과 소득 수준의 증가, 중산층의 확대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반면 북미와 유럽 지역에선 고지방, 패스트푸드, 가공식품의 섭취와 과식으로 인해 나타나는 만성질환을 벗어나기 위한 식단 변화의 노력이 건강식을 추구하게 됐다.
 
전 세계 식품 시장에서 ‘건강’ 트렌드는 전방위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카테고리의 식품도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오는 10월 열리는 전 세계 최대 식품 전시회인 시알 파리를 주관하는 시알 네트워크의 니콜라스 트랭트소(Nicolas Trentesaux) 대표는 “세계적인 음식 트렌드로 건강을 빼놓을 수 없다”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천연 식품, 덜 가공된 식품, 제조와 생산의 근거가 확실한 식품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무첨가’ 식품의 선호는 웰빙 트렌드의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NON-GMO, 글루텐 프리(Gluten-Free), 무설탕, 무지방 식품은 물론 각종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은 내추럴 식품이 주목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첨가 식품은 ‘건강’ 지향 소비의 대표적 사례다

 
건강 트렌드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음료 시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설탕과의 전쟁’ 이후 전 세계 각국에선 ‘설탕세’가 생겨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음료 시장은 첨예한 변화를 맞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음료 시장에선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음료 소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탄산음료(Carbonates), 농축과즙 등을 사용한 주스류(Concentrates)는 눈에 띄는 수요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반면 생수와 일회용(RTD, Ready to Drink) 차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주요 도시에선 감미료 첨가 음료에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해당 도시에선 다이어트 소다 종류의 판매가 부진하고, 건강한 식음료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탄산음료’의 대명사인 코카콜라(Coca-Cola)와 펩시(Pepsi)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펩시의 경우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는 극심한 판매 부진을 기록했다. 펩시 사에선 저칼로리 음료시장에서의 부진이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자체 분석했다.
 
최근 미국에선 기능성 음료의 확대로 ‘단백질 워터’가 뜨고 있다. 건강 지향 소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글로벌 인사이트(Global Insights)에 따르면 미국 내 단백질 음료 시장은 2015년 40억 달러(한화 4조 4400억원) 규모에서 2019년 67억 달러(한화 약 7조 4400억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단백질을 재료로 활용한 식품 시장은 2024년 433억 달러(한화 약 48조 1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됐다.
 
건강 스낵의 인기도 두드러진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스낵 시장에선 원물을 가공한 건강한 스낵 열풍이 불고 있다. 병아리콩, 용과, 버섯을 활용한 스낵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면류 시장에서도 건강 트렌드가 반영되고 있다. 세계 2위 라면 소비국인 인도네시아에선 ‘라면의 변화’가 시작됐다. 인도네시아의 대표 건강라면인 레모니요(Lemonilo)은 튀기지 않은 건조라면으로 트랜스지방, 화학조미료, 설탕이 들어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라면 판매 1위인 인도미(Indomie-볶음면)와 유사한 맛으로, 시금치로 만든 녹색 면발을 통해 건강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에선 특히 건강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며 식품 선택의 기준이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도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면서 유기농 쌀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2016년 프리미엄 유기농 쌀의 판매가 20~25% 증가했다. 또한 최근 영양 보충제와 비타민에 대한 수요가 증가, 최근 5년 매출액이 약 40%나 뛰었다.
 
 

■ ‘채식’, ‘식물성 단백질’ 시장의 부상…지속가능성의 시대

 
바야흐로 ‘가치 소비’의 시대다. 소비자들의 식습관은 ‘나’의 건강은 물론 나를 둘러싼 환경, 즉 지구의 건강으로도 향하고 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향한 보다 가치 지향적인 소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새로운 식품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식품업계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미래 유지’ 가치가 대두된 것은 식품 생산과 소비로 인한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의 위험이 마지노선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AO)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인구는 약 95억 명. 이들이 소비할 육류는 연간 소 1000억 마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늘어나는 인구의 육류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선 해마다 2억t씩 육류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가축, 기후변화의 잊힌 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업에 사용되는 토지의 양은 전 세계 토지의 50%, 담수 사용량은 25%나 된다. 축산업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달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채식 인구의 증가, 식물성 단백질의 소비 증가다. 특히 영국은 채식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에선 10년 전보다 채식 인구가 350%나 늘었다. 이들은 대체로 15~34세에 해당하는 젊은 세대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18년 미국 식품시장의 주요 키워드로 꼽히는 것은 식물 기반(Plant-Based) 식품이다.
 

‘지속가능성’을 향한 보다 가치 지향적인 소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채식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모든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 열풍은 미국 식품 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트렌드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환경을 지킨다는 윤리적 소비가 강조되며 ‘비거니즘’(Veganism)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비거니즘을 지향하진 않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쯤 채식을 원하는 소비자 사이에서도 식물성 단백질의 선호도가 높다. 그로 인해 첨단 기술로 기존의 식품 생산 방식을 바꾸는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지난해 식품업계의 ‘핫 이슈’ 중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채식버거 생산 스타트업인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에 한화 약 840억 원을 투자한 일이었다. 채식버거는 고기를 대신해 식물성 육류(Plant-based meat)로 만든다. 빌 게이츠를 비롯해 홍콩 재벌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인 더스틴 모스코비츠도 임파서블 푸드에 투자했다. 채식 시장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조짐이기도 했다.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업체인 ‘이노바 마켓 인사이트(Innova Market Insights)’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선 지난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세계적으로 식물성 식품ㆍ음료 시장은 62%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육류 시장을 대체하는 ‘식물성 식품’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민텔에 따르면 동물성 단백질의 대체 식품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식물성 재료로 만든 육류(58%), 치즈(56%), 우유(53%) 등이다. 특히 미국에서 우유 대체 음료의 매출은 지난 5년간 61%나 증가했다. 2017년에는 21억 달러(한화 약 2조 2476억) 규모로 성장했다. 우유 대체 음료에선 아몬드, 콩, 코코넛이 89%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피칸과 퀴노아 밀크 판매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유제품 대체 음료의 국제적인 판매액은 올해 163억 달러(한화 18조 3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마, 해초, 스피룰리나와 같은 ‘바다 채소는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하는 식물성 식품들도 주목받고 있다. 니콜라스 트랭트소 대표는 “유럽에서도 베지테리언 시장이 점차 커지며 대체 단백질을 찾는 소비자 층도 늘고 있다”며 “특히 해조류로 만드는 고기 대체 식품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향후 더 많은 식품이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무인 시스템, 배달 서비스…푸드테크의 부상

 
식품업계의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미래형 마트와 식당이 성큼 다가왔다. 전 세계 식품 유통업계에 불고 있는 무인 시스템은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가 됐다. 블룸버그와 이코노미스트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미국 식품 유통업계에 첨단 기술을 빠르게 도입,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무인 마트, 무인 자동차를 통한 배달, 로봇이 중심이 된 물류 센터와 로봇이 만드는 피자까지 등장, 미래 식료품 유통의 리더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
 
무인 배달과 로봇 시스템은 안전과 일자리 감소 우려 등의 잠재적 문제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식품 유통 업계의 변화 역시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어 무인 시스템의 확대가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 대형 수퍼마켓 체인 ‘크로거(Kroger)는 지난 6월 말 무인차량 스타트업 ‘뉴로(Nuro)’와 협력, 자율주행차량을 이용한 식료품 배달 계획을 발표했다. 스마트폰으로 크로거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면 온도 조절이 가능한 트렁크가 장착된 자율주행차량에 물건을 싣고 배달되는 방식이다. 크로거의 자율주행차량 도입은 아마존의 2시간 배달 서비스와 경쟁하기 위한 전략으로 등장했다.
 

식품업계에 무인시대가 도래했다

 
아마존 고는 계산대와 직원이 없는 무인 상점으로 지난 1월 시애틀에 처음 문을 열었다. 내부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으면 자동으로 계산, 아마존 계정으로 자동 결제까지 가능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LA와 시카고를 비롯해 연내 미국에 6개 지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월마트 역시 지난해부터 ‘진열대 스캔로봇’을 도입했다. 매장 통로를 돌아다니며 선반을 스캔하며 빠진 물품을 신속하게 채워넣는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4개주 50개 매장에 정식 직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대형 마트에서도 ‘점원’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선 ‘무인 상품 진열대’가 무인 경제의 새로운 주자로 떠올랐다.  중국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무인 경제가 급부상, 향후 중국 무인 소매시장의 소비자 규모와 거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중 대형 마트의 무인 시스템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최근 중국 대형 마트는 높은 임대비, 관리비, 인건비의 부담과 상대적으로 낮은 마진율로 인해 일부 폐점 위기에 몰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중국 대형마트의 시장 규모는 2% 감소했다. 일반마트와 소형마트의 시장 규모 증가율도 2% 하락했다. 이에 따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많은 기업들은 무인 상품 진열대에 투자를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말까지 무인 상품 진열대 관련 16개 업체에 투자가 진행, 투자 총액은 약 25억 달러를 넘어섰다.
 
로봇 셰프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실리콘밸리의 ‘줌 피자(Zume Pizza)’에서는 로봇이 구워주는 피자를 맛볼 수 있다. 로봇이 피자도우를 만들고, 소스를 바르며, 오븐에 피자를 넣고, 다시 배달트럭 안의 오븐에 넣는 일을 맡아 한다. 동시에 56개의 피자를 구울 수 있는 오븐을 갖춘 배달 트럭 안에서 마지막으로 구워져 주문자에게 바로 배송된다. 줌 피자는 가장 신속하면서도 맛있는 상태에서 배달되는 시스템으로 2016년 4월 첫 판매를 시작한 이후 2년만에 약 200만 달러(한화 약 2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칼리버거(CaliBurger)’는 지난 5월 로봇팔 ‘Filppy’를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칼리버거(CaliBurger)’는 지난 5월 로봇팔 ‘Filppy’를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쉼없이 패티를 구워내는 로봇 셰프는 한 시간에 약 300개의 버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칼리버거는 오는 2019년까지 50개의 로봇 팔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푸드테크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배달 서비스 분야다. 프랑스의 푸드테크 조사업체 디지털푸드랩(DigitalFoodLab)에 따르면, 2013~2017년 동안 프랑스의 푸드테크 누적 투자액은 약 3억2000만 유로(한화 4236억 원)로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총 472개의 스타트업이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 32%는 음식 배달 서비스 분야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는 오는 2021년 약 2000만 명의 프랑스인이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며, 53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요식업 시장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한 중국은 배달 서비스의 천국으로 부상했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ICT 기업들이 식품 배달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메이투안, 어러머 등 배달 플랫폼의 성장도 가속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식품 쇼핑이 활발해지며 배달 서비스 수요는 나날이 증가 추세다. 간단한 식료품은 물론 신선식품, 간편성을 강조한 밀키트(Meal Kit)까지 집 앞으로 배달되며 소비 풍경을 바꾸고 있다.
 

고승희 리얼푸드(헤럴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