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할래요?” 라는 인사를 받으면 자신이 관심과 매혹의 대상이 된 것 같아서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마음속으로는 섬세한 꽃 같은 향기에 젖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에게도 커피는 관심과 매혹의 대상이었습니다. 외로움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이들에게 커피와 카페는 영혼의 동반자이자 세상과 교류하는 무대였는데요. 자 오늘은 커피 한 모금을 호로록 마시며 커피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요?
에티오피아의 한 어린 목동의 발견으로 시작된 커피의 역사
6세기경 에티오피아에 사는 한 어린 목동은 염소들이 숲속의 작은 열매를 먹고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그도 열매를 따서 먹어보았는데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경험합니다. 어린 목동은 이 열매를 이슬람 사원에 전했고, 수도승들은 열매를 끓이거나 즙을 내어 발효시켜 마셔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졸음이 깨면서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효과를 보게 됩니다. 이때부터 수도승들은 이를 약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요가 많아지자 6~7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커피나무는 예멘을 거쳐 아라비아반도로 퍼져 나갔는데요. 원래 이슬람의 문화였던 커피를 유럽인들이 맛보기 시작한 계기는 12~13세기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커피를 한번 맛본 유럽의 병사들은 돌아와서도 향수처럼 커피가 간절했습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커피를 들여왔고 유럽의 종교계, 귀족에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커피에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커피의 인기와 더불어 카페라는 공간은 1475년에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645년에는 베네치아에 유럽의 첫 커피하우스가 등장했고, 1652년 런던, 1689년 파리, 1679년 함부르크, 1694년 라이프치히, 1721년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카페는 풍요로운 도시의 심장이 되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카페에는 사교계 인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철학가는 공론을 즐겼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영감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전 세계에 걸친 커피 대유행의 서막이 열립니다.
바흐 <커피칸타타>, 독일 1739
사교계 커피 문화의 중심에서 탄생한 바흐의 <커피칸타타>(*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바흐는 궁정악단에서 활동하며 주로 종교 음악을 작곡해왔는데요. 그의 몇 안 되는 세속적인 음악 중 대표작의 주제가 바로 “커피”였습니다. 당시 바흐는 자신이 주관하는 실내악단 <콜레기움 무지쿰>과 함께 <치머만 커피하우스>에서 정기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사교계 인사들이 날마다 몰려들었고, 모두들 커피와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단골이었던 바흐에게 “커피” 주제의 음악을 만들어 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고, 이를 유쾌하게 승락한 바흐는 당시 가장 유명한 시인 크리스티안 헨리치에게 대본을 의뢰하여 작은 음악극 형식의 칸타타를 완성했습니다. 바흐 작품번호 211번 <커피칸타타>는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커피 맛은 정말 기가 막히죠. 수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무스카텔 와인보다 더 부드럽죠. 커피,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요. 나를 기쁘게 하려면, 아… 커피 한 잔을 채워줘요.”
<커피칸타타>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중 커피에 대한 노랫말입니다. 바흐가 얼마나 커피를 사랑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의 트라베르소 플루트(가로 플루트)의 음계는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로 커피향이 날아오르는 형상을 표현해 정말 아름답습니다.
<커피칸타타>에는 아버지와 딸이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시집도 안 가고 커피에 빠진 딸을 못마땅해하며 커피는 몸에 해로우니 제발 마시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아버지는 커피를 끊지 않으면 시집도 안 보내주고 옷도 사주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지만, 딸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더 나아가 커피 예찬을 소리 높여 부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칸타타 중 명곡으로 평가받는 “아! 커피 맛은 정말 기막히지” 라는 노래인데요. 아버지의 아리아는 다소 묵직하고 투박한 멜로디임에 반해 딸의 아리아는 너무나 밝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조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흐의 마음이 투영되는 부분입니다. 궁중의 행사 음악과 종교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해야 하는 사회적인 위치가 아버지로 상징되었다면, 커피를 좋아하고 발랄하고 자유롭고 낭만적인 그 속마음은 딸로 묘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어쨌든 <커피칸타타>의 대대적인 흥행으로 독일의 커피 사랑은 더욱 커졌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프랑스 1888년
고흐에게 위로를 준 커피와 카페를 다룬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Terrace of a café at night (Place du Forum)”(*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가난과 번민의 화가. 그러나 아름다운 열정으로 기억되는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가 활동하던 시기인 19세기 말 유럽은 산업사회로 가는 과도기였는데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극심해 인간에 대한 가치가 묵중하게 돌아가는 기계 아래 억눌려 있었습니다. 당시 예술가들은 정신적인 가치에 대한 열망이 커져갔고, 그 중심에 고흐의 삶이 자리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는 아니었는데요. 가난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흐의 초기작품에는 가난한 서민에 대한 연민이 잘 드러납니다. 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작품에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서민들이 침묵 속에서 뜨거운 감자껍질을 벗겨 먹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한 여인이 커피를 따르고 있는데요. 고된 가난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커피였습니다.
“사람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 잘 먹어야 합니다, 좋은 집에서 지내야 하고 가끔씩 도망도 치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평화롭게 커피를 내려 마셔야 합니다.”
고흐에게 커피는 고된 삶에서 피어나는 평화이자 행복이었습니다. 고흐가 프랑스로 가면서 작품의 주제와 표현방식이 극적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그 핵심에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 위치한 아를르라는 작은 도시의 포룸광장(Place du Forum)이 있습니다. 고흐는 밤마다 이 광장에 자리한 “카페 드 라 가르(Café de la Gare)”에 앉아 당시 예술인과 교류하며 자신의 영혼을 다독였는데요. 누군가에겐 길 가듯 스쳐가는 밤이지만, 고흐에게는 레몬 빛 별빛이 떨어지는 너무나 황홀한 밤하늘이었습니다. 고흐는 마지막 남은 동전을 탈탈 털어 커피를 주문하고, 한 모금 한 모금 아껴 마셔가며 작품을 구상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Terrace of a café at night (Place du Forum) “인데요. 카페에서 올려다보는 별이 빛나는 밤을 그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합니다. 그 카페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Café Van Gogh’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는데요. 고흐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계속 그림을 그리려면 이곳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와 저녁에 찻집에서 약간의 빵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잔은 꼭 필요하겠다. 형편이 허락한다면 야식으로 찻집에서 두 잔째 커피를 마시고, 약간의 빵을 먹거나 가방에 넣어 둔 호밀 흑빵을 먹어도 좋겠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편지 속 문구를 통해 그가 얼마나 커피를 소중히 여겼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감은 미술가에게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물감 살 돈을 짜내어 커피를 마신 고흐에게 커피는 마치 가난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쿠바, 1926
미국 현대문학의 개척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속에도 은유적으로 등장하는 커피(*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미국 현대문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유명한 커피 애호가였습니다. 1926년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를 시작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등을 발표하며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헤밍웨이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힘찬 문체로 인간의 삶을 통찰하는데요. 모험을 즐겼던 그는 전쟁을 거치며 인간의 도전과 좌절, 용기에 투영된 나약함을 처절히 느끼고, 작품에 담았습니다. 특히 <노인과 바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요. 여기에도 “커피”라는 온화한 은유가 등장합니다.
“노인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온종일 아무것도 마시지 못할 것이므로 커피라도 꼭 마셔 두어야 했다.”
이 작품에는 두 잔의 커피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출항하기 직전에 잔심부름하는 소년 마놀린이 가져온 커피인데요. 설탕과 우유를 끓인 연유에 커피를 따라 놓은 커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돌체라떼의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피 한잔이 인생에 지친 노인에게 다시 한번 도전할 힘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노인이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끌고 오는 과정에서 상어 떼의 습격을 당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집으로 돌아와 마시는 한 잔입니다. 아무 소득 없이 탈진해 깊이 잠들었을 때 소년은 식은 커피를 다시 데워 노인에게 권하는데요. 첫 번째 커피가 도전이라면, 두 번째 커피는 고된 삶에 건네는 위로였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문장을 남깁니다. 헤밍웨이가 미국을 떠나 쿠바에 살면서 써 내려간 마지막 소설 <노인과 바다>. 쿠바에 머물게 된 이유도 다름 아닌 커피였는데요. 그가 좋아하는 커피는 크리스탈 마운틴 (Crystal Mountain)은 지금도 쿠바를 대표하는 커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상 <날개>, 한국 1936년
이상의 <날개> 작품 속 진하게 어려있는 커피의 흔적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을 개척한 천재작가 이상. 그 이름을 생각하면 곱슬머리에 세련된 이목구비, 아름다운 청년의 초상이 떠오릅니다. 일제 강점기를 살면서 지병인 폐병으로 요절하기까지 그의 삶에는 커피의 흔적이 진하게 어려 있는데요. 1930년대, 지금의 서울이 경성이라 불렸던 그 때 이상은 금홍과 함께 종로2가 사거리에 “제비”라는 이름의 다방을 열었습니다. 당시의 삶의 모습은 작품<날개>에 많이 투영되어 있는데요. 그 당시 다방은 경성 문학가들의 교류의 장이었었습니다. 이상은 제비 다방에서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등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 박스에 아무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 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 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룸들의 그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날개”에 등장하는 이상의 커피 마시는 모습입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의욕도 없을 때, 홀로 집을 나와 마시는 커피 한잔이 위안이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밝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경성역 대합실 한 켠의 티룸을 발견하여 그 안에서 홀로 끄적거리는 청년의 초상. 번화가의 티룸에서 부유한 청년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위선을 떠는 모습이 그는 오히려 역겨웠습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라는 자조적인 독백으로 시작하여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는 간절한 독백으로 끝나는 이 작품. “날개”에는 세상에 나가 도전하고 싶었던 청년의 마음이 아스라이 담겨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일본 1987
매일 커피 한 잔과 함께 작품을 써내려간 무라카미 하루키(*이미지 출처 : 캐시미어 저널)
커피를 음악과 마라톤만큼이나 사랑한 문학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처음으로 소확행이라는 말을 만들며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면, 풍경조차도 자신을 축복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재즈 카페를 운영하다가 창작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했는데요. 그는 자신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그나마 문학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아침에 내려 마시는 커피 한잔과 너덧 시간의 꾸준한 글쓰기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열여섯이었고, 밖은 비였다. 그곳은 항구를 낀 아담한 소도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늘 바닷냄새가 풍겼다.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커피 맛 그것보다는 커피가 있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내 앞에는 저 사춘기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이 있고, 거기에 커피를 마시는 내 자신의 모습이 또렷하게 비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의 배후로는 네모나게 도려내진 작은 풍경이 있었다.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 나온 문장입니다. 그는 작품에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다 주는 따스함의 문제”라는 미국 소설가 리차드 브라우티건의 문장을 인용합니다.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삶의 방식을 적어 내려갑니다. 작가로서 시대정신이나 역사적인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와 그 안에서 사랑하고 이별하며 감당해야 할 상실감이었습니다.
그는 성실한 생활 태도로도 유명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쉬는 시간에는 마라톤을 뜁니다. 그리고 또 남은 시간에는 동네의 조용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핸드드립 커피를 즐깁니다. 그는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가 시작되고 자신을 옭아매는 문제에서 가벼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그의 문장이 지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이처럼 잔잔하게 빛나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커피에 대한 예술과 빛나는 문장들을 살펴보았는데요. 문득 예술가가 커피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커피가 이들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현실이 고되고 바쁘게 흘러갈수록 커피는 감미롭고 예술은 아름답게 느껴지는데요. 비록 세상이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아름답게 꽃핀 예술혼과 도전에 대한 갈망, 상실과 좌절 등을 묵묵히 곁에서 어루만져 준 것은 다름 아닌 한 잔의 커피였습니다. 커피의 따스한 향기로움이 언제나 당신 곁에도 함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