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의 원래 이름이 ‘송병’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 조상들은 송편을 ‘햅쌀로 빚은 솔잎 떡’이라는 뜻의 한자어를 써서 ‘신송병(新松餠)’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소나무 송(松)’과 ‘떡 병(餠)’을 붙인 ‘송병’으로 불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송편’이 되었지요.
우리는 추석에 다양한 명절 음식을 먹습니다. 하지만 한 해의 곡식을 수확하는 계절인 가을에 햅쌀로 만든 송편만큼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 오곡백과가 무르익듯 황금빛 풍요로움으로 꽉 들어찬 송편 한 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양손으로 토닥토닥 빚은 작은 달
송편을 보고 있자면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그 모양이 꼭 닮았습니다. 소를 넣기 전에는 동그란 보름달을 닮았으며, 소를 넣어 반으로 접으면 반달 모양이 됩니다. 반달이 점점 커져서 만월이 되듯 달이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를 송편에 그대로 담아낸 것이지요.
과거 농경사회에서 달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달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시간을 예측하였고, 중대한 농사의 방향을 결정지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 해 농사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준 달과 하늘에게 감사의 의미로 달의 모양을 담아낸 송편을 빚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송편 속에 잘게 다진 콩, 밤, 깨 등을 빈틈없이 채워 넣는 것은 땅에 촘촘하게 뿌린 씨를 의미합니다. 이듬해에도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은 것이지요. 작은 송편 한 알에 농민들의 땀과 정성, 감사함이 꾹꾹 담겨 있으니 손 위에서 빚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빛나는 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한 송편
지금은 송편이 추석에만 먹는 명절 음식이지만, 재미있게도 과거에는 다른 명절에 더 자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옛 문헌인 19세기 초반의 문집 <추재집>에는 정월대보름 차례를 지낼 때 송편을 먹었다는 글이 있으며, 한양의 풍속을 적은 풍속서 <열양세시기>에는 2월 초하룻날 떡을 만들어 노비에게 먹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노비송편, 오색송편, 통과의례송편, 오려송편 등 여러 종류의 송편을 크고 작은 기념일마다 챙겨 먹었습니다. 이 송편들은 각각 종류별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요,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비송편’이란 음력 2월 1일(중화절 : 조선시대에 농사철의 시작을 기념하는 명절)에 노비들에게 나눠주는 송편입니다. 한 해 동안의 농사일을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의미지요. 송편을 노비의 나이 수대로 나눠줘서 ‘나이떡’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오색송편’ 이란 5가지 색을 물들여 작고 예쁘게 만드는 송편입니다. 오행, 오덕, 오미의 뜻을 담아 ‘만물의 조화’라는 이로운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통과의례송편’이란 책례시에 감사의 의미로 주변 사람들에게 돌리던 떡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추석 때 먹는 송편이 바로 ‘오려송편’입니다. 이 이름에는 ‘올벼’ 즉 일찍 여무는 조도미로 만든 송편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올벼’를 ‘오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추석 차례상에는 이 오려송편을 쌀밥 대신에 주식으로 올려 먹곤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매 순간 다채로운 송편과 함께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지역마다 고유한 개성을 품은 이색 송편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마다 특산물로 만든 개성 있는 송편을 볼 수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그 특산물이 앞으로도 풍요롭게 생산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정성껏 송편을 빚고는 했습니다.
가장 먼저 강원도부터 출발해볼까요. 강원도는 지역 특산물인 감자와 도토리를 이용하여 송편을 빚습니다. 도토리송편은 멥쌀가루에 도토리 가루를 섞어 만드는데요. 특히 장이 예민한 사람이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감자송편은 감자녹말을 익반죽하여 만듭니다. 감자의 녹말이 위벽에 막을 만들어 위를 보호하기 때문에 위장질환을 앓는 사람이 먹기 편한 송편입니다.
이외에도 강원도에는 메밀과 무가 많이 생산되지요. 멥쌀가루에 메밀가루를 섞어 송편을 만들며, 고춧가루로 양념한 무채를 송편 속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무채송편은 설탕을 넣은 달콤한 송편과 달리 물리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어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송편에는 쑥 대신에 모싯잎이 들어갑니다. 모싯잎송편은 푸른빛을 띠고 쌉쌀한 맛이 특징입니다. 송편 반죽에 모시 잎을 넣으면 특히 반죽이 더 차지고 쫄깃해지며, 식이섬유가 풍부해지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전주의 송편은 참기름을 발라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송편끼리 서로 달라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향이 좋아 군침을 확 돌게 만들지요.
충청도로 가면 고운 노란빛의 호박 송편이 등장합니다. 호박을 썰어 말린 가루를 멥쌀가루에 섞어 익반죽하여 만드는데요. 화사한 색감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물론, 쫀득쫀득한 단맛이 일품입니다. 한방에서 ‘가을 보약’이라고 부르는 호박은 비타민 A, C, E, D가 풍부하여 영양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송편은 모양이 아주 독특합니다. 동그랗게 빚은 송편을 손바닥으로 누른 다음에 가운데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마치 비행접시 같은 모양을 냅니다. 여기에 완두콩 소를 넣는 것도 역시 제주도 송편만의 개성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독특한 모양새의 송편을 꼽자면 평안도 해안지방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해안 지역의 조개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시조개 모양의 송편을 빚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볶은 참깨, 설탕, 간장으로 소를 만들어 쫀득쫀득한 모시조개를 그릇 위에 하나둘씩 쌓아갑니다.
이외에도 한반도를 위아래로 크게 나누면 북쪽 지역의 송편은 대체로 크고 투박한 느낌이며, 모든 음식에 멋을 내는 서울 및 경기 지역은 작고 앙증맞은 크기로 만들어 한입에 쏙 들어가게 송편을 빚습니다.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송편이지만 이렇게 보니 각 지역의 뚜렷한 특성과 주민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송편이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던 거겠지요. 작은 송편 한 알에 차곡차곡 축적된 시간을 떠올리니 절로 그 깊은 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내음에서 온다.
솔잎과 함께 쪄낸 송편의 또 다른 이름은 ‘송병(松餠)’ 또는 ‘송엽병(松葉餠)’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 조상들은 송편을 만드는데 솔잎의 역할과 의미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깨끗하게 손질한 솔잎을 송편 사이사이에 깔고 찌면 솔잎의 향이 떡에 배어듭니다. 향도 좋지만 말랑말랑한 떡 표면에 자연스럽게 새겨지는 솔잎의 자국도 참으로 멋스럽습니다. 여기에 솔잎이 주는 진통, 진정, 항생 등의 효능은 송편을 찾는 이에게 건강함으로 보답해주지요.
송편 사이에서 조용히 존재하며 그 역할을 온전히 다하고 있는 솔잎의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시원하면서 맑은 솔잎의 향이 맡아집니다. 그러면 점점 마음을 넉넉히 쓰기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송편의 솔잎처럼 다른 이의 삶에 향을 입혀줄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어집니다.
작은 송편 한 알 위로 오순도순 가족들과 둘러앉아 송편을 만들던 옛 시간이 흘러갑니다. 세월이 녹아든 커다란 손과 아직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빚어냈던 송편은 어른이 된 지금도 이맘때면 마음을 꽉 차게 만들어 주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가을도 송편만 같기를 바라 봅니다.